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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국의 천재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 아이큐 300 천재가 느낀 사회 그리고 환멸

by 신림83 2020. 12. 1.

미국의 천재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 아이큐 300 천재가 느낀 사회 그리고 환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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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천재 이야기입니다.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 

아이큐 : 대략 300 (심리학자 에이브라함 스털링은 250~300으로 측정하였다) 

 

어린시적을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

2세에 라틴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3세에 독학으로 그리스어 마스터.
4세에 해부학에 관한 학술 논문을 집필하였다.
8세에 8개 국어를 했으며, MIT와 하버드 의대에 합격하였으나 너무 어려서 입학을 거부당했다.
11세에 수학교수들에게 4차원 공간에 관한 강의를 하였고, 높이 평가되어 하버드에 입학하였다.

 

청년기

1910년 하버드에서 윌리엄 제임스 시디스는 학생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왕따를 당하여 신경쇠약으로 요양소에 잠시 보내졌다.

 


1914년 하버드 박사 학위를 받고,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동료 교수의 시기와 학생들보다 어린 나이로 조롱과 질투를 받아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교수직을 사퇴한다.

 

그리고 장년의 그

사회에 환멸을 느낀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숨어 지내기를 희망했고, 과학과 수학을 포기하고 이름을 바꿔가며 이동하며 지냈다.


1924년 뉴욕 헤럴드 기자 트리분은 월스트리트의 사무실 중 하나에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1909,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지금은 주 23달러를 받고 금고를 계산하는데 그 능력을 쓰고 있다"라고 보도하였다.


뉴요커 잡지는 과거의 신동의 몰락을 기사로 써서 우습고 재미있게 조롱하였다.


그는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뉴요커 잡지와 7년간 싸운 끝에 연방 대법원에서 패소하였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그는 공인 판단되며, 프라이버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WILLIAM J.

40개 국어를 구사했고, 너무 뛰어나서 기대치가 높았던 그의 지성을 질투하고 조롱한 사회와 여론에 의해 그는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고 사회에서 완전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1944년 보스턴 한 임대 룸 숙소에서 의식을 잃은 시디스를 집주인이 발견했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천재는 재능을 십 분 발휘하지 못하고 47세 나이로 뇌졸중으로 홀로 사망하였다.

 

출처

 

아이큐 300 천재의 최후

유머,정보,감동,동물,엽기,공포,블박,후방,영상,사회,기타

www.etolan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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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최근에 영재, 천재 하면서 좀 애매하신 분들이 등장했지만,

이분은 쌩 리얼 천재였다.

 

지금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많은데, 저 시절은 어땟겠는가...

 

너무 저 위에 글이 축약이 많이 되어 있어서, 전채적으로 흘려가는 건 맞지만, 조금 더 설명을 가져와 보겠다.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

William James Sidis 

 수학, 언어에 특별한 능력을 보였던 미국 천제,

예상 지능지수는 250~300 비율 지능 기준 IQ

역사상으로도 수치가 대단했던 천재

 

부모님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1887년 미국으로 이주해옴, 러시아 유대계

아버지 또한 언어적으로 매우 뛰어났고, 하버드 대학 입학 후 2년 조기졸업, 이후 아버지는 심리학을 가르치며,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논문과 다양한 저소로 심리학의 개척자라 불린다. 

 시디즈는 생후 6개월 때부터 말할 수 있었고, 18개월 때 뉴욕 타임스를 읽었으며 8살 때는 독학으로 8개 국어(라틴, 그리스, 프랑스, 러시아, 히브리어, 터키, 아르메니아어)가 가능했고, 벤더 굿이라는 인공어를 설계해서 썼다고 한다. 

 나는 8살 때 뭐했나...

 유전자 레벨이 틀린 거 같다... 어마어마..

 

하버드 생활

 8살에 입학시험을 통과했지만, 아이라는 이유로 입학 거부, 11살이 되면서 특별 학생 자격으로 입학, 하버드 대학 역대 최연소 입학생이 된다. 16 새까지 공부하며 지냈고, 이때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이후에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는데,

강사, 대학원

 역시 시기 질투는 어디에나 있는가, 이때부터 학생들을 육체적 위협 강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라이스 대학교 강사 자리로 옮겼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대하는 태도에 결국 그만두게 된다. 이후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하버드 로스클에 입학 3학년 2학기까지 다닌 그는 중퇴하게 된다.

그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노동절 전쟁반대운동 참여로 징역 18개월을 받았고, 재판 시, 하나님을 믿느냐 라는 답변에 나는 어떠한 신도 믿지 않는다 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석방돼서 돌아온 그를 반긴 부모는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하고, 화가 난 그는 부모와 의절한 뒤, 단순노동과 같은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공인인가?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유명한 천재였으며, 그로 인해 그의 사생활은 늘 뉴스화 되었다. 사생활 침해로 고소했지만, 이 당시 법원의 판결은 '당신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공인이다'는 판결로 인해 자신을 권리를 인정받는데 법정싸움을 7년 동안 하게 된다.

 35살에 뉴욕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 공무원이 된다. 245등이었는데, 높은 등수는 오히려 이슈가 될까 봐 조절했다는 루머가 있다.

괜찮은 삶이었다.

 위의 대충 요약본처럼 비참한 삶은 아니었고, 공무원 생활 적당ㅎ 하며, 다양한 자신의 흥미 위주의 저술을 했다. 우주, 공간, 언어, 사회, 전차, 교통, 심리, 원주민 역사, 그리고 특허도 몇 개 낸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높았다.

 그의 천재성에 기대되는 만큼을 업적이 없어, 언론 등에서 정말 많이 괴롭혔어 많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46세에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었고, 이것 역시 뉴욕 타임스는 과학적인 강제 교육의 멋지고 아름다운 승리다 라고 비꼬는 기사를 낼 정도였다.

 

8세에 하버드 입학시험 통과라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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