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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유흥출신 영부인 네오토 나오코, 데비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국부, 초대 대통령의 3번째 아내, 한국 입장에서는 좀 그런 그녀...

by 신림83 2021. 2. 1.

일본 유흥출신 영부인 네오토 나오코, 데비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국부, 초대 대통령의 3번째 아내, 한국 입장에서는 좀 그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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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흥업소 출신의 영부인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이며, 과거의 일이라 그렇지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의 데비 수카르노,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수카르노 대통령의 영부인입니다.

데비 수카르노

젊은 날의 데비 스카르노

1940년생

 

그녀의 남편

수카르노 Sukarno Soekamo 

수카르노 Sukarno Soekamo 

인도네시아의 독립 운동가이며, 국부라 불리는 인물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독재자로 인도네시아 통치, 이후 수하르토에게 권자라 옮겨진다.

 

 인도네시아 독립에 분명 큰역활을 했으나, 이후 교도 민주주의 기반 독재정치 때문에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인물이지만, 국부임은 틀림없다. 

 

 반서방적 성향, 서구 대중문화 유입 금지, 문화의 정치화 등이 문제라고 한다.

 

일본이 제국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동남아를 휩쓸때, 많은 나라가 거부했지만,

인도네시아는 우호적이었고, 나름 잘 이용한다. 인도네시아군의 무장상태 업그레이드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이후 일본군이 떠나고 독립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과 사이가 좋은 이유,

 

이후 생전, 친일적인 외교 스탠스를 많이 보여주었고, 수카로노가 일본 방문이 많았고, 극진한 대접은 받을 걸로 유명하다.

 

일본 방문중, 1959년 

 

"네모토 나호코", 당시 19세의 여성을 만나는데,

 

데비 스카르노

그녀가 데비 스카르노의 일본식 이름, 결혼하기 전을 첫 만남이었다.

 

일본 본토인이지만, 대단히 서구적인 미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생활고가 극심하여, 고등학교 중퇴후

10대부터 모델, 영화 단역 등 일을 하였고,

 

주요 일터는 사실 긴자의 고급 술집 접대부

 

뛰어난 미모, 화술 또한 좋았다고 한다. 

이미 호스트스 업계에서 에이스였고,

 

정계, 재계의 초거물급을 모시는 초 텐프로였다고, 국가 귀빈 자리까지 모시기 된 그녀

 

데비 수카르노

그리고 그녀는 일본을 방문했던 외국의 중요 국가원수 수카르노를 모셨고,

극진한 대접을 받은 수카르노는,

하룻밤 상대를 넘어 그녀와 점점 더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해감.

 이 이야기는 이렇게 로맨틱하게 포장되어서 주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지자자들에 의해 전해지지만, 일본 쪽에서는 사실은 그녀가 일본 정부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여러 경제적 진출 계획과 관련하여 미션을 받고 의도적으로 수카르노에게 접근하였다는 것이 오히려 정설처럼 퍼짐.

 진실이야 나호코만이 알겠지만, 그녀와 수카르노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일본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진출 또한 매우 대규모로 이뤄짐.

 인도네시아 경제는 수카르노 때부터 확실히 일본이 제대로 잡은 셈

 물론 수카르노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인 만큼.. 꼭 그녀 때문만이 아니라 나름의 정치적 계산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촉진시켰을 가능성도 높지만...

 

수카르노의 마음을 얻은 데비 수카르노

처음에는 수카르노도 그녀를 욕정의 대상으로만 봤겠지만,

그녀의 미모와 서비스뿐만 아니라,

지성으로 인하여 두 사람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이들의 관계는

하룻밤 잠자리 상대 

현지처

정식 부부로 발전함.

 

부부로의 발전

 

물론 수카르노에게는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었음.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수카르노는 정식 부인들 외에도 평생에 걸쳐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한 호색한이었음)

이미 일부다처제 허용 국가, 그리고 그곳 독재자

수카르노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1962년 수카르노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으며,

이름 또한 네모토 나후코에서 데비 수카르노로 개명함.

* 이때 그녀는 종교 또한 수카르노와 결혼을 위하여 이슬람으로 개종.

 

젊고 아름다운 데비 수카르노는,
수카르노에 다른 부인들을 제치고,
그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됨.

 

3번째 영부인과 그녀의 딸

두 사람 사이에서는,

딸(카리나)도 한 명 생겼고,

당시 한국 언론에는,

이 일본인 영부인이
'인도네시아의 실권자'로 소개되기도 했다고.
그러나 그녀의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는데..

그녀가 어린 나이에 호스티스계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에서,
그녀는 소녀가장이 되었고,

그녀의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나 그 남동생은 정작 그녀가
'대통령의 아내'가 된 그해에 자살해버렸고...

이 때문에 데비 수카르노는 우울증에 시달림.

영원 할리 없는 독재자 대통령 영부인의 삶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 3년 만에,

이번에는 정치적 격변이 그들 부부를 덮쳤는데...

늙은 호랑이 수카르노는, 떠오르는 태양 수하르토의 눈치를 계속 살펴야 했고,

결국 1965년 수하르토는 쿠데타를 일으켜, 수카르노를 연금시킴.

그리고 수카르노가 1968년 수하르토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됨에 따라..

그녀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게 됨.
(출산을 위해 홀로 일본에 귀국한 사이 수카르노가 쿠데타로 가택연금되면서 그녀는 인도네시아로 가지 않고 프랑스 망명을 택했다. )

 

프랑스로 망명..

 수하르토는 애초부터 이 일본인 여자의 정통성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고, 남은 수카르노의 여생은 두 번째 부인이 보필하도록 함.

 사실 데비 수카르노에게는 어찌 보면 다행일 수도 있었는데... 그녀는 수카르노가 실권을 잃은 이후부터 일본대사관을 통해 '일본 망명'을 추진했는데, 일본 정부는 여러 외교적 사정을 들어 이를 거절했고, 결국 데비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남.

권력무상

그리고 한때 독재자로서 인도네시아에 전권을 휘어잡았던 수카르노에게는,

그가 눈을 감기까지의 2년 동안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 펼쳐졌는데,

그가 느꼈던 권력무상의 허무함 중 에는,

데비 수카르노에 관한 일도 관련이 있었을 거라 판단되는 게,

프랑스로 망명을 떠난 그녀는 법적으로 아직 수카르노의 부인이었지만,

여러 남성들과 염문을 뿌렸고, 약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음.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겹쳐 1970년 수카르노가 사망하였을 당시,

그녀는 수카르노 일족으로서의 지위를 행사하지 못하고..

유산 분배에서도 제외됨(그러나 뒤로는 수카르노의 제1-2 부인과 협상을 통해 수카르노의 비자금 중 일부를 유산으로 받았다는 비공식적인 썰도 있는데.. 뭐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니까.. 그런 루머도 있다는 것 정도로만)

또 그와 별도로 인도네시아 쿠데타 정부 또한,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국부'에 대한 예우로서,

그녀에 대해서 연금을 지불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줌.

 

나름 열심히 사신분

이 당시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피의 숙청과 독재의 연속이었지만..

데비 부인의 삶은 다행히 그런 것들과 무관해짐.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의 일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유일한 관심은 경제적인 것으로, 그녀는 메이저 석유사들의 대인도네시아 로비스트로서 고용되기도 하였다. 단, 이미 수하르토 독재가 뿌리내린 상태라... 끈 떨어진 전 영부인 신세였던 그녀의 로비스트로서의 실적은 미미했던 편이라고..)

프랑스에서 샐럽으로서의 삶을 즐겼는데, (프랑스에선 살바도르 달리, 마가렛 대처, 링고 스타, 알랭 들롱 등과 교류.)

이때 알랭 드롱과 연인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으며,

필리핀 전 대통령의 딸 미니 오스메냐를 와인잔으로 폭행하여 상해를 입히고,

34일간 수감되는 등의 소동을 일으키기도.

 그녀가 와인잔으로 미니 오스메냐를 때린 이유는 미니 오스메냐가 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것이, 너무 같잖아서 참 교육 차원에서 때렸다고 함..

 그리고 그녀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감옥생활은 기숙사 같이 즐거웠다는 드립을 침..

 1974년에는 남성잡지에 자신의 누드를 찍기도 했는데, 대통령의 전 부인이라고 누드를 찍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많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이런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침.

 

일본 영구귀환한 과거의 영부인

그리고 그녀는 결국 일본으로 영구 귀환하였고,

2008년 이래 도쿄 시부야에 거주하고 있음.(바닥면적만 100평에 달하는 4층 대저택)

경제적으로는 연금을 포함하여 여전히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고,

손자의 재롱 또한 보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음.
(2017년 10월에 그녀의 소속사 대표가 그녀의 재산 2억 엔을 횡령하여 검찰에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함)

그녀는 일본 연예계에서 또한 족적을 남겨,

연예계 이슈에 대한 매우 직설적인 돌직구와,

영부인의 삶에 가려졌던 인간적인 면모 등을 통하여,

일본 대중에게 어필하였고,

80이 다 되신 지금까지도 예능을 비롯하여 현역 연예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

 

나 열심히 살았다..

"나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 남들보다 3배 열심히 일하고, 3배 열심히 공부했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 남들보다 3배 열심히 한 일(?)이 좀 범상치 않아 보이는 하지만... 뭐 어쩃건 제대로 정규 교육 과정도 못 마친 그녀였지만,

인니어, 영어, 프랑스어 3개 국어를 완벽히 마스터했다고 하며 인도네시아 영부인 시절에는 이슬람 율법까지 공부함.

사실 한국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으신 분이긴 하다.

 

데비 수카르노의 정치성향

노년의 데비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직위에 있던,

 

분명히 '정치'의 영역에도 속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녀의 정치성향도 소개해보려고 해.

 

데비는 인도네시아 정치에 관해서는,

 

프랑스 망명 이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혀 언급하지 않았어.

 

다른 수카르노 일족들이 그녀에게 인도네시아 정계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지 않냐고 제안하였을 때도 거절했으며,

 

수카르노의 딸의 정계 활동도 지원하지 않았지

 

이 점은 개인적인 억측일 수 있지만,

 

그녀가 남편을 쫓아낸 수하르토 정부로부터 연금을 수령하고 있던 것과 이러한 행보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는 생각도 들어.

(*뭐 수하르토도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갈라섰지만, 인간적으로는 한때 수카르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뭐 어떤 이유에서건 수하르토가 그녀에게 연금을 주면서 정치적 침묵과 같은 반대급부를 요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니까...)

 

데비가 인도네시아 정치에 대해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유일한 언급을 했을 때는,

 

수하르토가 죽었을 때로,

 

'내 남편을 쫓아낸 수하르토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와 마찬가지의 억압적인 정권을 세운 독재자로 애도받아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어.

 

이 여성이 정작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 정치로..

 

일본 정치권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데..

 

이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거북한 내용들이 많아.

그녀의 베스트 총리는 고이즈미 

그녀가 일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총리로 뽑는 인물은 고이즈미이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는 물론 A급 전범의 합사 또한 옹호하고,

 

천황가를 부정하는 것은 일본인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흔하게 반복되는 일인데, 한번 졌다고 일본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주장과 더불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꾸는 개헌 또한 지지하고 있어(그리고 개헌해서 전쟁 능력을 갖춘 이후 주일미군은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함)

 

그녀의 정치관은 종잡을 수 없는 면이 많은데..

 

그녀의 남편이었던 수카르노는 명백한 좌파 정치인이었던 비해,

 

데비 수카르노는 유럽 망명 시절부터 마가렛 대처와 매우 가까웠고,

 

대처를 매우 높이 평가했어.

 

그러나 이런 성향 또한 일관적이지 않아서,

 

그녀가 천황제 이외에 가장 열심히 옹호하는 정권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정권은 의외로 북한 정권?

바로 북한정권북한 정권으로,

 

이는 남편 수카르노가 생전에 김일성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여(대처나 북한 정권을 동시에 좋아하는 거 보면 딱히 좌우파에 개념보다는 그냥 자기한테 잘해주면 좋아하는 듯.. 고이즈미도 일본 총리 치고는 인생역정에 스토리가 있는 편이고)

 

이 때문에 평소에는 야스쿠니 신사 전범 합사까지 옹호하던 그녀는,

 

북한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북한을 지지하며,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은 납치문제로 조선을 비난하기 전에, 그보다 훨씬 컸던 조선민족의 고통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할머니는 평생 평양도 많이 왔다 갔다 했고, 가면 대접도 잘 받으며,

 

북한의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위조지폐 건 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무조건 북한 옹호적인 태도를 고집하며, 

 

'김일성, 김정일주의 연구'와 같은 친북단체에 꾸준히 기고문을 보낸다고 해.

그리고 일본 내의 조총련 문제에 있어서도 앞장서서 조총련을 옹호하여,

일본 극우 네티즌들로부터,

 

그녀의 극우적인 사상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 때문에 매우 까이기도 함...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 보기는 이분의 정치행 보는...

 

정말 끔찍한 혼종이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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