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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파루크 1세, 이집트의 마지막 왕, 마지막 왕인 이유, 특기는 도둑질, 포르노 메니아, 윈스턴 처칠의 시계, 이란왕의 관, 그리스 왕비를 훔친 상상 이상의 왕, 이집트 왕정 타파의 일등공신

by 신림83 2021. 1. 29.

파루크 1세, 이집트의 마지막 왕, 마지막 왕인 이유, 특기는 도둑질, 포르노 메니아, 윈스턴 처칠의 시계, 이란왕의 관, 그리스 왕비를 훔친 상상 이상의 왕, 이집트 왕정 타파의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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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사실상 마지막 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가져다 둡니다.

파루크 1세

파루크 1세

روه مو هيون بالإصبع/Fārūq ij nua laon.

Faruk,Farouk 1. 1920년. 2. 11 ~ 1965년. 3. 18.

재위 - 1936년 4월 28일 ~ 1952년 7월 26일.

 

이집트의 사실상 마지막 왕

- 진짜 마지막 왕은 그의 아들 푸아드 2세(1952~)지만, 생후 6개월 만에 왕위에 올라 11개월 만에 폐위되어 큰 의미는 없다.

 

파루크 1세, 왕비, 그리고 아들

파루크 1세는 이집트의 마지막 왕인데 마지막인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주다 갔다

간단하게 몇 개만 추린 업적은 다음과 같다

 

1. 목표가 도둑왕이 되는 거였나 보다. 왕인데 도벽이 엄청났다.

 

2. 도둑기술을 전수받기 위해서 이집트 최고의 소매치기를 국왕 명령으로 사면시키고 소매치기 비법을 전수 받음

 

3. 이 솜씨로 2차 세계대전 중에 회의하다가 처칠의 손목시계를 훔쳐 도망감. ㅇㅇ 그 처칠 맞음 

 

4. 당연히 처칠은 개빡쳐서 외교문제로 번짐. 하지만 씹었다

 

5. 좀 더 특이한 걸 훔쳐보고 싶어 졌음. 마침 이란 왕이 죽어서 시체를 테헤란으로 이동시키던 중이었거든?

 밤중에 이란 왕 관을 털어서 보검과 보석을 훔쳐감

 

6. 이란은 당연히 개빡쳤음. 외교문제로 번졌지만 또 씹었다.

 참고로 이건 유명한 것만 늘어놓은 거고 평민들 물건은 그냥 평소에도 왕창 훔쳐갔다.

 

7. 도벽뿐만 아니라 식탐도 진짜 심했다. 몸무게가 130kg이었음.

 아니 어떻게 도둑질을 한 거지 민첩 스텟이 제로일 텐데

 

8. 한 번은 잠을 자다가 사자한테 습격당하는 꿈을 꿨음.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이로 동물원에 간 다음에 총으로 사자들을 다 쏴 죽였다

 

9. 성욕도 엄청났다. 파루크가 가지고 있는 포르노 컬렉션은 당시 세계 1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10. 포르노만 보면 좋겠는데 실제 여자도 진짜 많이 건드렸다.

 대충 추산한 것만 해도 파루크가 덮친 여자만 해도 5000명이 넘는 걸로 추정

 

11. 이 중에는 그리스 왕비도 있었다. 이란 왕은 죽어있기라도 했지 살아있는 그리스 왕비를 이집트 왕이 덮쳤다

 

12. 덮칠 때도 나름 머리 굴린답시고 왕궁 불을 정전시켜서 꺼버린 다음 어둠 속에서 덮쳤는데 그래 봤자 냄새 때문에 다 들켰다.

 그리스 왕비는 불 꺼지기 전에 문 밖에 서있던 근육 헬창이 내 남편 인내 마 자신 있나 협박을 해서 간신히 정조를 지킬 수 있었다.

 

13. 한 번은 프랑스 여배우를 데리고 캐딜락으로 카이로 시내를 질주하다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단속됐다.

 경찰이 다가오자 권총을 뽑아 들어 격퇴

자동차 관련 일화

 상당한 자동차 운전 및 수집광, 특이점은 차만 사면 붉은색으로 도색,

법으로 붉은 차를 금지, 왜냐? 자신만 붉은 차를 몰아야 도로에서 과속, 음주운전 등을 해도 경찰이 귀찮게 안 해서라는 썰이...

 

14. 낙지년들이 폭격을 가할까 봐 온 이집트가 불을 끄고 조심하고 있는데 왕궁 주변은 전부 불을 켰다.

 왜냐면 어두우면 안 보이니까

 

15. 참다 참다 화난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나라를 뒤집어엎었지만 털끝 하나 안 다치고 이탈리아로 탈출 성공.

 탈출할 때 타고 가는 배에 실려있던 건 이집트 최고의 술들과 야동 컬렉션이었음

*1차 중도 전쟁 패배와 군부의 반발, 1952년 가물 압델 나세르 주도 군부에 강제 퇴우 당함

*재산 일부를 가지고 유럽으로 또낌, 별다른 견제 없이 편하게 잘 살음

 

16. 이탈리아, 로마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 먹다가 심장마비로 45세에 사망

*그래도 사망 후 시신은 이집트로 보내지고, 무덤에 안장되었다.

 

엄청난 인물, 다양한 의미로,

 

관리하던 시절의 파루쿠1세

아랍의 봄과 파루크 1세

 이런 위대한 왕 때문일까나? 아랍의 봄 이후 많은 중동의 국가들이 왕정복고를 꿈꾸는 와중에, 이집트에는 그다지 왕정을 되살리는 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주의를 빨리 정착시켜준 훈륭한 왕일 지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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